《비움의 봄》은 바른 선(禪)을 전하는 도심 속의 참선 학교입니다. 참선을 배움으로서 삶과 존재의 이유를 깨닫고, 자신이 주인 된 삶의 평등한 행복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텅 비어 있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봄(알아차림)이 있으며, 그것은 봄철의 생동하는 빛처럼 풍요롭습니다. 이처럼 비어있음과 동시에 가득 차있는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즉 나를 나에게로 데려가는 마음의 자세를 소위 '참선'이라고 합니다.
참선은 각진 것이라면 보듬어주고, 벗어난 것이라면 돌려줍니다.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마음과 다시 만나게 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말할 수 없는 악보와 같아서 언어로는 이것을 다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식은 언어를 벗어나(불립문자不立文字)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것을 전하여(이심전심以心傳心) 투명하게 비어진 곳에서도 늘 고요하게 바라보는 단 하나의 진실한 마음인 '참나(眞我)'를 밝힙니다.
비움을 보는 것이 곧 참선이므로 '비움의 봄'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참선이란 모든 고통의 원인인 '자아의 병'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이루는 마음공부 입니다. 나고 병들고 죽는 육신과 마음이 아니라, 그 생로병사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본래 자리를 챙겨 진실을 확인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두고서 행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자각의 길은 이미 자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명상은 요가와 불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상의 역사 속에 고승들이 가장 사랑해 왔으며 또한 발전시켜온 자각법이 바로 참선입니다. 참선은 상대적인 대상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참선의 중요한 자세 중 하나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인 만큼 무언가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 자신에게로, 나를 나에게로 데려가는 온전한 마음의 자세를 지도해주는 곳이 참된 수행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수행을 함에 있어 우상화된 신 혹은 숭배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창시자를 우상화하는 '명상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상화는 '절대적 진리'의 반대인 '상대적인 도달 지점'을 내세우기 때문에 '영원한 현재'로서의 진실한 마음으로 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에 대승불교의 스님들과 재가 선지식인들이 바른 선을 전하기 위해 참선을 가르치고 있지만, 낡은 언어로 인한 소통의 부재, 대중과의 접근성 문제들로 선맥이 시들어가는 형편이어서 구하는 이들에게 쉽게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비움의 봄'은 도심 속의 템플스테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선원을 지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불교 전통의 참선 교육원입니다.
템플스테이와 같은 수준의 참선을 배우고 싶지만, 사찰과의 접근성과 낯선 환경(숙식 문제 등)에 대한 고민으로 참여를 망설이셨던 분.
유사 과학등으로 포장된 사이비 명상 단체나 종교 색이 너무 짙은 수행처를 지양하고, 전통적인 가르침을 현대적인 설명으로 풀어낸 올바른 선(禪)을 공부하고 싶은 분.
마음공부를 오래 해왔음에도 불교 철학의 난해함으로 인해 여전히 자기 확신을 갖지 못해, 이제는 완전한 지식과 이해(선교일치禪敎一致)를 얻고 싶으신 분.
여러 방향으로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해, 이제는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명한 방법을 얻고 싶으신 분.
어떤 단체에 소속되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익숙한 카페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교학적인 가르침 보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앎을 구하고 싶으신 분.
비움의 봄,은 특정 사찰, 종단, 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오로지 참선 수업을 통한 수익과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대부분의 불교가 선으로 통합되어 있는 까닭에 선불교의 선(禪)을 종교 수행으로 여기는 경우가 흔하지만, 선은 종교도, 교리도, 이념도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의 '본래 그 자리'를 알아차리도록 이끄는 자각 프로세스입니다. 부처로 부터 마하가섭, 달마, 역대 조사들에 의해 전해진 올바른 선지식을 전하는 자는 승속을 따로 두지 않고, 오직 가르침을 통해서 스스로 증명되어야 합니다.